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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가정예배

2020. 9. 27. 주일가정예배(마21)

사랑하는 주교교회 교우 여러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온라인으로 만납니다. 함께 모여 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느끼며 주일을 준비합니다. 함께 살펴 볼 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21장 23~32절입니다. 본문과 연관하여 출애굽기 17장 1~7절도 함께 읽어보시면 더 좋겠습니다. 

<성경본문> _마태복음 21:23-32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함께 읽는 말씀 _출애굽기 17:1-7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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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성경읽기 순서>
23~24절 : 김석진 집사
25~26절 : 천정미 집사
27~28절 : 양경석 집사
29~30절 : 최해운 집사
31~32절 : 김선이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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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성경읽기 순서>
23~24절 : 국완중 장로
25~26절 : 양미자 권사
27~28절 : 박근광 집사
29~30절 : 최미경 집사
31~32절 : 김지은 사모

◆ 마태복음 21장 23~32절을 읽고 아래 물음에 답해 보세요.

  1)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물었을까요?
      (21장 전체를 읽고 생각해 보세요.)

 

  2) 28~32절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한 아들은 누구인가요? 왜 그런가요?

 

  3)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물음에 이 비유를 들려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꼭 맞는 정답은 없습니다.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쯤 궁금증을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성경은 그 안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함께 읽고, 묵상하고, 물음을 던져보는 이 시간을 통해 성도님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묵상>

(1)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물었을까요?

   21장 전반부를 보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나 성전 정화 사건 등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예수님께 쏠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자기들의 입지가 좁아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또 성전 정화 사건 같은 경우는 성전에 장사치들이 있는 것을 기득권층이 묵인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그들이 괜찮다고 한 것을 예수님이 엎으셨으니 어쩌면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권위를 꺾어서 자기들의 안위를 지키려고,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려는 목적으로 물어본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 비유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한 아들은 누구입니까?

   둘째 아들입니다. 뒤늦게라도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들은 “네”라고 대답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했지만 뉘우치고 말씀대로 했습니다. 두 아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귀로 듣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대답만 시원 시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대로 해야 말을 듣는 것이지요. ‘아멘, 아멘’ 잘 해서 좋은게 아니라, 남들이 안 봐도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진짜 믿는 사람입니다.

(3)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물음에 이 비유를 들려주신 이유, 예수님의 권위와 이 비유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보여주는 비유, 그리고 그들의 권위가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하나님 말씀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늘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성경말씀을 연구할 때는 얼마나 치열한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으려고, 무엇이 바른 이해인지 정확하게 분별하려고 밤낮으로 애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알기는 하는데 그대로 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 말씀 잘 해석해서 그들이 했던 일은 ‘너는 죄인이고, 나는 의인’이라는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가리켜서 ‘회칠한 무덤’ 같다고 표현하십니다. 회칠한 무덤은 한 마디로 겉으로 보기에는 번지르르한데 속은 비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겉으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말씀의 능력은 비어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1:22) 예수님은 말씀대로 사는 분이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요1:14)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삶으로 실천하는 순종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이야기와 또 비유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첫째 아들처럼 말로는 “네, 알겠습니다.”하면서 정작 그렇게 살지는 않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둘째 아들처럼 하기 싫은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마음 돌이켜서 그렇게 살아보려는 사람입니까? 주일 아침에 권사님들과 통화하면서 성경 읽어드리면 “목사님 저는 아는게 없어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에 덧붙여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만 알고, 그거 잊지 않고 살려고 노력해요.”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얼마나 아느냐보다 아는만큼이라도 살려는 그 마음이 좋은 것입니다. 아는 것보다 중요하는 것은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지난주 함께 읽었던 출애굽기 1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다가, 만나와 메추라기의 양식을 공급받게 됩니다. 아침에는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고, 저녁에는 메추라기 떼가 그들의 앞마당에 쏟아져 내립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홍해의 기적, 만나와 메추라기. 그야말로 하루 하루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살았습니다. 매일 매일이 기적과도 같은 날이었지만, 17장에 와서도 여전히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광야 40년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의 다음 세대가 되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약속의 땅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들로 다듬어진 것을 봅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말씀대로 사는 삶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목회자들 사이에서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강대상을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옮기고 싶다면 한번에 옮기지 말고 매주 10cm씩 옮겨라.” 무슨 얘기일까요? 교회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 뭐든 서두르면 말이 나오니까, 한주에 10cm 정도 조금씩 바꾸면 언젠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이지요. 구전에 따라서 10cm가 아니라 1cm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변화에 익숙지 않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비유 속에서 1cm라도 움직이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신앙생활도 인생도 갑자기 크게 바꾸려 하면 오히려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큰 결심은 오히려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작은 실천이라도 하나씩 하나씩 늘려간다면 언젠가 우리의 인생은 조금 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쩌면 오늘 말씀 속 종교지도자들의 모습, 또는 첫째 아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옳고 그름을 재단하고, 세상사람들은 죄인이고, 자기들은 의인이라는 선민의식이 스스로를 망가뜨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는 작은 실천이라도, 적어도 아는만큼이라도 그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설교녹음>

20200927주교교회온라인모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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