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새찬송가 433, 430장
<성경본문>
누가복음 1장 26-38절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말씀 묵상을 위한 질문>
-
가브리엘의 인사에 마리아가 그 말을 듣고 놀란(29절)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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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대답,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에는 어떤 결단이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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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의 답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말씀의 의미를 헤아리며 자유롭게 생각해 보세요.
<말씀나눔>
<마리아에게 찾아 온 천사>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왔을 때 마리아는 왜 놀랐을까요? 예수님 이전에 하나님의 사자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곤 했습니다. 한 부족의 족장이나 족장이 될 사람들(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민족의 지도자들(모세, 여호수아, 사사들)에게나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임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까지 들었던 다윗 왕에게도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예외적인 경우가 하갈이었지만, 그도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될 이스마엘의 보호자였습니다.
그에 비해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녀는 갈릴리 나사렛 지방의 어린 여자였습니다. 갈릴리 나사렛 지방은 이스라엘 중 보잘 것 없는 촌동네였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마리아는 여자였습니다. 당시 가정을 대표하는 사람은 남자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에게 현몽하신 내용만 나오는데, 누가복음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이 또한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마리아는 어린 여자였습니다. 당시 여자들의 결혼 적령기는 13세였고 특별한 사유가 아니라면 그녀 또한 10대 중반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골 촌구석의 10대 어린 여자 아이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온 것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마리아>
그런데 천사가 찾아온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에게서 선포된 말씀은 더욱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기가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남녀간의 성관계도 의미하는 말입니다. 문제는 마리아는 아직 요셉과 함께 살지 않았고, 약혼한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관계를 하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 만약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그녀가 간음했다며 고발했다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의 율법을 보자면 어쩌면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을 들은 셈입니다. 누군가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을 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하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돌에 맞을 것이고, 모른다고 말하면 간음했다고 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한순간에 인생에 꼬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당연한 일입니까? 우리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세상 누구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 무거운 책임감을 어린 마리아는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마리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오랜 시간을 두려움 가운데 떨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우리 삶에 시련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가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모진 핍박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을 믿음이 있습니까? 혹시 쉽사리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지는 않습니까? 13살 어린 여자였던 마리아의 믿음이 놀랍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먼저는 시골 작은 마을 어린 소녀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어떤 능력과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능력의 크고 작음, 우리의 위치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된 것도 우리의 어떤 자격 때문에 된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첫번째 이야기는 어느 촌구석의 작은 소녀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은 나같이 작은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마리아의 자세입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눈앞이 캄캄해질만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마리아는 그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이 다가옴을 알고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13살 소녀보다 못한 믿음이 되어서는 안될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부분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 때 한 작은 소녀의 결단과 헌신을 통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 그리고 하나님나라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결단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삶을 드리고, 헌신하는 사람 그 사람들이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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