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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가정예배

2021. 1. 17. 주일가정예배

<찬송>

새찬송가 90장, 135장

새찬송가 90장
새찬송가 135장

<기도>

 

<성경봉독>

요한복음 1장 43~51절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묵상을 여는 질문>

1.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때에 어떤 말로 그를 인도했습니까?(45,46절)

2. 나다나엘을 보신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47절)

3. 예수님은 또 어떤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51절)

<말씀묵상>

:: 와서 보라 ::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이전에 35~42절에서 안드레와 요한은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 나아왔고, 베드로는 안드레를 통해서 왔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처음으로 예수께서 빌립을 만나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이 단순합니다. "나를 따르라" (43절)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셨는지, 또는 그 만남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나 빌립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이 구약이 예언한 메시야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말보다 만남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은 것이지요.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나다나엘을 찾아간 빌립의 말은 '와서 보라'는 말이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런 예수님을 만나도록 인도하는 말은 '와서 보라'는 말이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게 낫다는 말이지요. 빌립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소개하기 위해 '와서 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의 어떤 수식어보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분의 삶, 그분의 인격 등 사람 자체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어서 나다나엘도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이 '와서 보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약 누군가에게 '와서 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는 부분은 건물의 화려함이나 번듯함이 아니라 기존 교인들의 따뜻한 환대라고 합니다. 어떤 말 때문이 아니라, 건물이나, 음악이나 다른 어떤 분위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를 통해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삶으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삶이 이러한 것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여주며 '와서 보라'고,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이라고, 예수님이 가신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믿음의 길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한편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과연 그런 사람인가 싶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하고, 우리가 먼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서는 어떤 말로도 예수님을 전할 수 없습니다.

::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 ::

   나다나엘을 만나신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께 받은 이름입니다. 그는 본래 간사한 사람이었지만, 그 간사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믿음을 인정 받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은 이처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는 표현은 유대인들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임을 아셨다고도 볼 수 있고, 무화과나무가 율법과 관련이 있어서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간사함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와서 보라',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이 두 표현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기 원합니다.

:: 하늘과 땅을 이어주시는 분 ::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나다나엘에게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은 야곱이 벧엘에서 꿈에 본 환상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한 것은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진 사다리였습니다. 사다리는 떨어져 있는 곳을 서로 연결해주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우리는 세상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입니다. 2021년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의 삶으로 나타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암송>

요한복음 1장 12~14절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나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교회소식>

1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 완화로 24일 예배는 교회에서 모입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