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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가정예배

2021. 1. 31. 권위의 말씀(막1)

기도

 

찬송가

199장 나의 사랑하는 책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성경암송

요한복음 1:12-14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경말씀

마가복음 1장 21~28절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묵상을 위한 물음

1. 예수님의 교훈이 '권위 있는 자'와 같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22절)

2. "○○가 당신과 무슨 ○○이 있나이까" 빈칸에 들어갈 말과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세요.(24절)

3. 21절에서 29절 전반부까지는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서로 짝이 되는 구절을 찾아보세요.
   (처음이니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보세요^^) 

   예시) 21절 '회당에 들어가', 29절 '회당에서 나와'


말씀묵상

회당에서 가르치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당시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성인의식을 통과한 유대인 성인 남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예수님도 그 때가 차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씀에는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당시의 성경교사인 서기관들의 것과도 달랐고, 귀신조차도 그분의 말씀 앞에 순종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권위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그분 말씀에 그러한 권위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하신 분이시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의 권위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서기관들의 가르침
  당시의 서기관들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보통은 십계명을 생각합니다. 성경의 많은 계명들이 있지만, 익숙하지도 않고 다 기억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유대인에게는 600개가 넘는 율법이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명령만 365가지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성경의 계명을 지키려고 세부 항목들을 정하다 보니 너무 많아진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 하나만 가지고도 식사준비는 어떻게 하고, 안식일에 이동해도 되는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무슨 일은 해도 되고 하면 안되는지 등등 너무 많은 세부 항목들이 있었습니다.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치 바닥에 구슬이 잔뜩 깔려 있는 복도를 지나가는 것처럼 여차하면 율법을 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시 서기관들은 어떻게 하면 율법을 잘 지킬 수 있을까를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습니다. 늘 무언가를 하라거나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괴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단절시키는 계명
  당시의 율법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더욱 험난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 둘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돈이 없어 회개의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죄인'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인'으로 정죄당했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들은 죄인들이 더럽다고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율법에 대해 잘 안다 하던 이들이, 오히려 그 율법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또한 자기들과 구분 지으며 멀리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단절시키는 율법이 선포되던 그 회당에 '귀신 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회당에,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단절되어 홀로 남겨진 사람,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그이가 예수님께 부르짖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24절)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단절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뒤이어 나오는 부르짖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24절)는 그들이 지금까지 들어왔던 수많은 율법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던 절망감으로 인한 탄식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혹시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의 여러가지 단면들이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상을 품고 세상의 아픔에 함께 동참해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염려와 분열의 원인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넘쳐나지만 여전히 외로움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들은 넘쳐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말씀은 우리를 정죄할 뿐입니다. 말씀 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지식으로서 그 말씀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말씀을 기준으로 나 자신이나 남을 정죄하는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죄하거나 구별 짓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심판의 말씀조차도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꾸짖음입니다. 성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그분이 들려주시는 가장 소중한 이야기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가르치시다
  서기관들이 수많은 율법의 계명을 가르치기 바쁘든 그 때에 예수님은 모든 율법 위에 있는 최고의 계명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계명입니다. 수많은 율법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열심은 좋으나, 그 열심이 오히려 그들을 가두는 올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유이지, 구속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의 계명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사랑의 계명 안에 율법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별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랑으로 회복시키시다
  그분의 가르침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귀신 들렸다고, 병에 걸렸다고 죄인으로 정죄되고 밀려났던 이들을 고쳐주사 친구와 가족의 품으로, 그들을 지켜주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때에 우리 삶에도 이와 같은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분의 사랑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분의 품 안에 거하는 사람의 마음에도 사랑의 마음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잠잠히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들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 속에서 그분의 사랑의 능력으로 우리 삶 전체가 회복되고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