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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1. 4. 18.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눅24)

찬송가

새찬송가 165, 284장

 

 

성경본문

누가복음 24장 36~48절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설교문

오늘 우리에게 부활은

  지난 2주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활주일에는 빈무덤 앞에서 그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고난의 한복판에 있을지라도 부활하신 주님은 찾아오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닫힌 문을 넘어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이 이제는 제자들을 닫힌 문 너머의 세상으로 파송하신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누가복음 말씀은 사실 지난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그 이야기를 다루는 다른 버전입니다. 지난주 요한복음 말씀은 예수께서 '닫힌 문을 넘어' 들어오심을 강조하고 있었다면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은 어떤 부분을 강조하며, 또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줄까요? 누가복음이 증언하는 부활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이 동시에 전하는 이야기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을 때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신 것과 '손과 발을 보여주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손과 발을 보고 기뻐했던 것과 달리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은 여전히 두려움 가운데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니 여전히 그분이 귀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 예수께서는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물으시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설명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분의 몸을 경험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싶다고 말했을지라도, 실제로 그가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었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음식을 드렸고, 예수께서 그 자리에서 그것을 드셨다고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은 이처럼 '사람의 몸' 그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몸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몸의 부활

  예수님은 부활하실 때에 '사람의 몸' 그대로 부활하셨습니다. 물론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부활하셨을런지도 모릅니다만, 오늘 본문은 분명히 '사람의 몸'으로 부활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만약 사람의 몸이 문제가 있고 불완전한 존재였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물질적인 육체가 아닌 다른 어떤 형태로 부활하시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진짜 사람의 몸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전히 사람의 육신을 가지셨다는 것은 인간의 몸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의 몸과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지금보다 빨리 망가지고 죽음에 이르는 연약한 몸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신들의 노예, 영혼의 감옥

  고대 사람들이 사람의 몸에 관해 가진 생각 중의 하나는 사람은 신들의 노예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고대의 신화에는 '티아맛'이라는 여신의 몸을 터뜨려 그 시체로 세상을 만들었고, 신들의 고된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신들의 노예로서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선하신 하나님이 그분의 선하신 뜻에 의해, 아름다운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이처럼 세상과 사람에 대한 당시의 부정적인 관점에 대해 도전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의 몸은 영혼의 감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육체는 감옥이고, 죽어서 영혼이 몸을 벗어날 때에야 참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고난 뿐인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구원이라 생각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렇듯 몸에 대해 부정적이던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몸

  혹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 여러가지 고통이 우리를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픈 곳도 있고,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참 좋다'고 말씀하셨던 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실 때에도 완전한 사람의 몸으로 만나셨고 제자들은 비로소 안심합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수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 몸의 감각을 통해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몸을 통해 부모님의 따스한 온기를 느꼈고, 우리의 자녀나 이웃을 위해 사랑을 베풀 때에 우리의 몸을 통해 그 사랑을 전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약해져가는 몸을 보면서는 하나님 이외에는 영원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은 몸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의 부활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우리의 몸에 대해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도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비록 젊어지지는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니 진정한 구원, 진정한 하나님나라는 몸을 벗어나야 주어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 곳에서 우리의 몸과 함께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깊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거듭남'은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7절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가리켜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라고 표현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죄 사함은 무엇이고 회개는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죄를 의미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벗어난 화살'입니다. 죄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저지른 몇 가지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마치 과녁을 벗어난 화살과 같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죄 사함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행위에 대한 용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생의 방향을 바꿀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란 죄를 뉘우치고 돌이켜는 행위를 말합니다. 죄가 잘못된 방향으로 삶을 살아간 것이니, 회개란 그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옛사람의 죽음

  그러나 삶의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작은 습관 하나도 바꾸지 못해 평생을 달고 사는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오죽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바뀔 사람'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진짜 죽음이라면 이전의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옛사람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지난 날을 반성하고 옛사람의 죽음을 선언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변화하려면, 옛사람이 죽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가 진짜로 죽지 않고도 옛사람과 결별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옛사람의 죽음을 선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이 시작됨을 그분이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구원으로의 초대입니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새롭게 되어 진정한 자유와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도무지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지 못하고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몸도 다시 살리셨고, 오늘 우리의 몸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도, 우리의 마음도, 변화되지 못한 우리의 옛사람도 거듭남으로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그분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