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이스라엘의 왕이여!”
그 환호는 단지 열광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온 이들의 간절한 기대가 실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의 현실도 바뀌리라는 바람.
그 기대는 진심이었지만,
예수님의 걸음과는 조금씩 어긋나 있었습니다.
그분은 군마가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오셨습니다.
싸우지 않겠다는 길.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오신 왕.
겉으로는 조용하고,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그 길은 힘보다 평화를, 위엄보다 겸손을, 정복보다 섬김을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종려나무 가지는
예수님을 향한 찬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가 바라는 것과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것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환호는
며칠 뒤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덕은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실망 하나로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하지요.
그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그날 군중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
예수님은 그런 변덕을 아시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까지 이어지는 그 걸음을,
묵묵히, 조용히, 그러나 능동적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짐은 단순히 참고 물러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비움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상대의 반응을 따지지 않았고,
결과를 보장받은 후에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살아가려 합니다.
정답을 다 알지 못해도,
주님의 곁에 머물려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예수님의 방향을 향해 걷는 사람들.
비록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고,
우리의 노력이 때론 수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 걸음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
종려주일은 기쁨의 날이자
고난의 문턱입니다.
그날 흔들었던 종려나무 가지를 다시 바라보며,
오늘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가?
나는 내 뜻을 이루려 주님을 부르고 있는가?
아니면 그분의 길을 따라, 내 마음을 내어드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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