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184, 285장
성경본문
요한복음 3장1~17절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요약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교회에 오래 다니거나 말씀을 자주 듣는다고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십수년을 교회에 다니고서도 하나님을 못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생각의 틀을 깨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에 우리 마음에는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확고한 신념을 깨뜨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오는 니고데모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유대교 신앙이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정식 랍비 교육도 받지 않은 젊은 청년 예수님의 가르침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 지위가 위태할 수 있었기에 그는 사람이 없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그런 니고데모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는 그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안다는 말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예수님은 그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나라를 향한 열망을 알아보시고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들려주셨습니다. 우리가 때로 무슨 말로 기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심을 니고데모의 의중을 헤아리신 예수님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3절) 거듭남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껍질을 깨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의 틀을 깨뜨릴 때에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 너머를 보려는 사람에게만 발견되는 곳입니다.
이 거듭남은 또한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5절) 물은 만물의 근원이며 처음으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입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내 생각과 고정관념이라는 틀을 깨뜨리고 넘어설 때에 우리는 새로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거듭남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마치 갑각류가 껍질을 깨고 나와야 더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끊임없이 기존의 틀을 깨고 나와야만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작은 틀을 깨며 나아갈 때에 우리는 조금 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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