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16 | 부활절 여섯째 주일
부활의 기쁨이 일상으로
부활절 여섯째 주일, 부활의 기쁨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기쁨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정의 표면에서 일상의 구조 속으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찬양하던 입술에서 살아가는 손끝으로. 부활의 은혜가 삶의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함께 걸을 이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갇힌 자 바울의 공동체 사랑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교회를 향한 마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자신도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기도가 자신의 믿음을 붙잡고 있음을 알았던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믿음은 고백으로 시작되지만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길을 잃습니다. 그 삶은 늘 누군가와 함께 걷는 여정입니다.
관계 속에서 자라는 다섯 가지 성품
바울이 제시한 공동체를 지켜가는 다섯 가지 태도 -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평안 - 는 모두 관계 안에서 길러지는 성품입니다.
- 겸손: 내 중심을 비우고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태도
- 온유: 말할 수 있어도 잠잠히 기다리는 힘
- 오래 참음: 반응 없는 시간도 함께 머무는 용기
- 사랑: 자기중심을 넘는 선택
- 평안: 하나 됨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의지
이것들은 말로 배워지기보다 관계 속에서 고통을 겪으며 익혀지는 것들입니다.
작은 결석이 준 깨달음
최근 요로 결석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작은 결석 하나가 온몸을 긴장시키고 극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결석은 몸 안에 좋지 않은 것들이 쌓여 있었음을 알리는 신호였고, 배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무엇보다 아픔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느낄 수 있다는 것,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교회의 아픔과 희망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픔이 있다는 건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울고, 함께 버티고, 함께 회복해 나간다면 그 공동체는 여전히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시선은 싸늘합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교회엔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여전히 교회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분량, 하나 되는 몸
교회는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계속 수선되고 다듬어져야 하는 살아 있는 몸입니다. 공동체는 우리가 서로를 향해 거울이 되어주는 자리이고, 신호를 감지해주는 감각기관이며, 우리가 자라날 수 있는 못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다른 분량을 주셨습니다. 공동체는 모두를 똑같이 만들려는 곳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다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리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교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을 따라 다시 걸으면 됩니다. 놓쳤던 것을 주워 담고, 꺼내지 못한 통증을 나누고, 다시 서로를 살피면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 되게 하신 이를 따라 서로를 세우는 몸이 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내야 할 부활 이후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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